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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중상위권 대학에서 신소재공학을 전공 중인 박서현(가명) 씨는 향후 졸업 후에도 학업을 이어갈지 고민이다. 재료공학을 전공했던 삼촌이 유망한 분야라고 권유해 선택한 전공인데 취업 경쟁이 치열해져 석사급은 상위권 스펙이어야만 안심할 수 있고 박사급은 돼야 안정권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대학원 입학을 포기하자니 신소재공학 쪽에서 학사 자격으로는 명함도 못 내밀 지경이라 차라리 일본으로 취업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연구개발(R&D) 핵심역량 확보에 비상이 걸린 한국 교육 및 산업계의 현주소다. 이공계 인재들 사이에서는 취업전망이 불투명해 석·박사 도전을 망설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카이스트·포스텍 등 연구비가 집중되는 일부 학교를 제외하면 이과계열은 물론 공과계열에서조차 제대로 된 대학원 선발 과정이 사라진 지 오래다. 서울 소재의 한 상위권 대학교수는 "극히 일부 학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교 및 학과에서 대학원은 원서만 쓰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됐다."며 "그런데도 학문에서 미래를 찾지 못한 학생들이 발길을 끊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공계 국가 지원이 과기특성화대학에 편중되면서 주요 논문의 최다 배출 창구인 서울권 주요 대학조차 학문 후속세대의 맥이 끊기는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따르면 학교별 '학생 1인당 교육비'는 카이스트·디지스트·유니스트·지스트 등 4개 과학기술특성화대에서 평균 7,892만 원에 달하며 서울대(4,336만 원), 성균관대 (2,808만 원), 고려대(2,286만 원) 등 서울권 주요 대학과 상당한 격차를 보였다. 서울 사립대 평균은 1,391만 원에 불과했다. 일반대 지원 통로인 정부의 각종 대학지원 사업도 '평가를 위한 평가'에 매몰돼 교수들조차 지원 예산을 따내는 데 유리한 연구에 집중할 뿐 정작 사회 전반에 필요한 연구는 외면하는 실정이라고 관계자들은 지적했다.


기업들은 기업들대로 'R&D 인력투자 가성비'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A사는 덩치만 비대해진 사내 R&D 인력의 효율성 문제로 인력 규모를 조정해야 할지 수년째 고민이 크다. 이 회사 임원은 "연구소 인력을 꾸준히 늘려왔지만, 솔직히 제대로 일하는 인력은 10명 중 한두 사람이고 나머지는 시키는 일만 겨우 하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그나마 공공연구 부문이 R&D 고급인력 수요 창출의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의 과학기술백서 자료에 따르면 2008년 1만 5,000명대였던 국내 정부 부문 연구원 수는 2016년 이후 2만 7,000명을 돌파해 3만 명 선에 근접하고 있다. 2016년 3만 명을 기록한 일본 정부 부문 연구원 수에 바짝 다가선 것이다.


하지만 대학과 기업 부문을 놓고 보면 한일 간 격차가 여전히 크다. 2016년 현재 기업 연구원 수가 일본은 48만 명대로 집계됐지만, 국내 기업은 28만 명대에 그쳤다. 같은 해 대학 연구원 수도 일본은 13만8,095명에 이른 반면 한국은 4만759명 수준으로 조사됐다. 한국의 두뇌가 일본 연구진을 1대2나 1대3 수준으로 상대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우리 정부와 산업계, 연구기관들도 대외 산업의존도를 벗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 등으로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기초연구비는 2008년 약 50억 달러이던 것이 2017년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응용연구도 같은 기간 약 61억 달러에서 153억 달러대로 급증했다.


물론 R&D 투자액 증가가 그대로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2018년도 과학기술혁신역량지수 자료를 보면 일본의 과학기술 분야 지식창출지수가 100이라면 한국은 41.3으로 OECD 국가 평균(42.0)에도 미치지 못했다. 과학기술 분야의 경제적 성과 항목에서도 일본의 지수를 100으로 놓고 본다면 한국은 44.9에 그친 것으로 평가됐다. 미국·일본·유럽연합(EU)에 모두 출원된 삼국특허 건수를 봐도 2016년에 한국은 인구 백만명당 52.1건으로 일본(134.4건)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기술무역수지를 봐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적자국 신세인 데 비해 일본은 2010년 흑자 규모가 연간 200억 달러를 돌파할 정도로 원천기술력을 과시하고 있다. 특히 기계·부품·소재 분야에서 우리의 대일의존도가 여전하다. 2월 20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등 4개 부처 장관들은 커피전문기업 달콤커피가 내놓은 로봇 바리스타 ‘비트’를 체험했는데 핵심부품인 로봇팔은 일본 기업 덴소가 만들었다. 올해 히트를 치고 있는 LG V50 스마트폰의 카메라모듈에는 소니의 이미지센서 칩인 IMX 시리즈가 쓰인다. 이뿐만이 아니다. 금속·세라믹, 정밀석유화학 등 우리 산업의 주요 길목마다 일본산 기술이나 소재, 부품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과의 R&D 역량 격차가 여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양국의 산·관·학별 R&D 투자 비율 구조는 거의 비슷하지만 기업이 주도하는 산학협력의 혁신성과 지속성에서 차이가 난다고 전문가들은 전한다. 국내 유명 공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도 대기업이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산학협력을 하고 있지만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고위험 기술보다는 기존에 해외기업이 상용화한 기술을 개량하는 수준의 중·저위험 기술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며 "반면 일본에서는 대기업이나 우량 중견기업들이 장기간 대학연구실과 호흡을 맞추며 선도기술에 투자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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