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가 가짜 학술단체 문제를 집중 보도한 이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교육부, 한국연구재단 등 관계 당국은 한국 연구자들의 실태 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추가 취재 결과, 연구재단이 조사 대상으로 삼은 한국연구자정보 (Korean Researcher Information, KRI)의 데이터베이스 자체가 허술하게 운영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재단 “가짜 학회 와셋 482명 참석… 1천 26건”
뉴스타파는 최근 연구재단이 국내 연구자들의 와셋 (WASET: World Academy of Science, Engineering and Technology, 세계과학공학기술학회) 학술대회 참가 실적을 1차 조사한 결과를 입수했다.
▲한국연구재단이 실시한 가짜학회 참석 실태 1차 조사 결과 (출처: 한국연구재단, 조승래 의원실)
연구재단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7년부터 최근까지 와셋이 주관한 학술대회에 다녀왔다고 KRI에 실적을 입력한 국내 연구자는 모두 482명이다. 실적 건수로 집계하면 1,026건이다. KRI 등록 ‘학술활동’ 실적 가운데 학술대회 주관 기관이 ‘WASET’ 또는 ‘World Academy of Science, Engineering and Technology’로 입력된 경우를 추출한 결과다.
적발 건수 기준으로 대학별로는 성균관대가 74건 (19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전북대 69건 (20명), 강릉원주대 59건 (6명), 서울대 53건 (25명), 연세대 38건 (17명) 순으로 나타났다. 와셋 학술대회에 참가·투고한 연구자 수는 서울대가 25명으로 가장 많았다.
조사했다는 DB 자체가 부실… 가짜학회 실적 누락에 오류까지
앞서 뉴스타파는 와셋 홈페이지 데이터를 전수 조사한 결과, 2007년부터 지난 6월까지 한국인 연구자가 총 4천 227건의 발표용 논문·초록을 와셋에 게재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연구재단의 조사 건수는 뉴스타파의 자체 전수 조사 결과의 4분의 1 수준이다. 뉴스타파는 연구재단 조사의 기초가 된 KRI 데이터베이스에 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와셋 학술발표 실적이 상당수 누락된 것이다.
KRI는 연구재단이 운영하는 국가 데이터베이스다. 2018년 현재 50만 명이 넘는 연구자의 이력이 보관돼 있다. 문제는 연구 실적 입력과 갱신이 의무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와셋의 엉터리 학술대회 참가 기록이 있는 연구자들도 KRI에는 학술활동 실적을 남기지 않기도 한다. 2013년부터 와셋에 발표용 초록 10건을 투고한 국립대 A 교수는 자신의 학술활동 페이지에 아무런 학술대회 발표 실적을 등록하지 않았다.
수도권 소재 사립대 B 교수의 경우 2008년을 마지막으로 학술활동 실적을 올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교수는 2011년 두 차례 국가연구과제 내용을 와셋 학술대회에서 발표했다. 연구자가 성실히 학술활동 실적을 갱신하지 않으면 가짜 학회 기록 역시 누락되는 구조다.
▲가짜 학술대회 기록을 가진 연구자 가운데 KRI에는 실적을 등록하지 않은 사례가 있다. (출처: 한국연구자정보)
와셋 학술대회 실적이 KRI에 등록은 돼 있더라도 내용상 오류가 있는 사례도 발견된다. 한 사립대 교수는 2015년 3월과 6월 와셋 학술대회에 다녀왔다고 실적을 입력했지만, 주최기관은 저명한 국제학회 중 하나인 IEEE (미국전기전자학회)라고 기록하기도 했다.
이처럼 부실한 KRI 데이터베이스를 기준으로는 가짜 학회에 대한 전수조사가 불가능한 셈이다.
와셋 발표자료가 ‘SCI급’ 논문 실적으로 둔갑
취재팀은 한국연구재단이 조사 대상으로 삼은 학술활동 실적 외에 연구자들이 등록한 논문 실적도 확인했다. ‘WASET’ ‘World Academy of Science’ 등 영문 키워드를 교차로 검색한 결과, 와셋에서 출판한 논문 264건이 정규학술지 논문 실적으로 올라와 있었다.
▲올해 와셋에 투고된 발표자료가 SCI급 논문 실적으로 등록돼 있다. (출처: 한국연구자정보)
더 놀라운 점은 264건의 와셋 논문 실적 가운데 109건이 SCI (Science Citation Index·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급 논문으로 등록돼 있다는 사실이다. SCI급 논문 게재 건수는 정부가 대학 연구역량을 평가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그럼에도 와셋에서 학술발표를 한 일부 연구자들은 정상적인 동료평가 (Peer review)도 거치지 않은 엉터리 학술대회의 발표자료 (프로시딩)를 스스로 해외우수학술지 논문으로 등록한 것이다. 한국연구재단 학술기반진흥팀 관계자도 “학술대회 프로시딩은 정규학술지 논문이 아니다. KRI에 학술지 논문 실적으로 입력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국연구재단은 국가연구개발 (R&D) 과제와 학술연구실적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검증해야 할 임무를 맡고 있다. 그런 연구재단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 국가 최대 연구자 데이터베이스, KRI는 실적 누락, 오류로 멍들었다. 가짜 학회에 대한 1차 조사 결과가 부실해진 이유다.
국회에서는 오는 10월 국정감사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교육부, 한국연구재단에 대한 집중 질의를 예고하고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조승래 의원은 “연구자들이 구조적으로 허위 실적을 등록하는 일은 국가 R&D 체제의 기본을 흔드는 중대한 문제”라며 “전수조사가 미진하다면 감사원 감사를 요청해 제대로 조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김경진 의원도 “정부는 가짜 학술단체의 실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언론에서 제기한 문제에 대해 사후 조치만 하고 있다”며 “이번 국정감사에서 정부 실태조사의 적정성 문제와 가짜 학회 실적이 드러난 연구자들에 대한 후속 조치 문제 등을 집중 제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출처: 뉴스타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