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잘 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장하석 ES 교수, 과학철학의 현대적 의미와 역할 제시
탐구와 오락의 대상으로서 과학에 대한 접근 강조
“학문과 평화의 경희정신, 미래 사회 여는 동력 될 것”


과학이 발전하는 속도는 눈부실 정도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인공지능(AI), 정보통신기술(ICT), 항공우주, 의공학, 나노과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 속도가 워낙 빨라 관련 규제나 법안, 사람들의 인식이 뒤따라가지 못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장하석 영국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겸 경희대 에미넌트 스칼라(Eminent Scholar)가 지난 7월 ‘국제협력 하계프로그램(GC)’ 강의를 위해 서울캠퍼스를 찾았다.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과학철학자인 장 교수는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과학철학의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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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


장하석 교수는 “과학에서 말하는 진리는 무엇인지, 과학을 탐구하는 방법과 그렇게 얻은 지식은 어떤 의미인지, 과학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 등을 고찰하는 것이 과학철학”이라고 부연했다.


장 교수가 과학철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과학철학의 역할 때문이다. 과학기술이 급격하게 발달하면서 윤리적, 법적 논란도 커지고 있는 이때 과학철학이 윤리적, 법적 문제를 판단하고, 과학의 파급효과를 다양한 관점에서 성찰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는 “과학자들이 전문적인 연구에 집중하다 보면 거기에서 비롯되는 여러 문제들을 간과하는 경우가 있다. 과학철학은 과학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도덕적 기준점과 사회적인 영향력을 생각하게 한다”고 말했다.


또한 장 교수는 “오늘날의 과학은 전문화, 세분화되어 있어 일반 사회와 소통이 되지 않거나 과학자들의 시야가 좁아지는 문제도 있다”면서 “과학계와 일반 대중 사이에서 소통의 매개체가 되어주고, 과학적 오류와 한계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과학 발전을 독려하는 역할도 한다”고 설명했다.



“과학을 하나의 문화로 즐길 수 있어야”


최근 과학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장하석 교수는 과학을 경제발전의 도구로만 인식하는 현대인의 태도를 꼬집으며, 문화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왜 과학을 진흥시켜야 하느냐’고 물으면 대다수가 ‘잘 살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이러한 인식은 과학에 대한 거부감만 키울 뿐이다”라며 “과학 선진국으로 꼽히는 나라 국민들은 과학을 하나의 문화로 즐긴다. 과학박물관 등의 시설도 잘 구축돼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과학을 음악에 비유한다. 악기를 다루지 못하거나 음치라고 해도 음악을 즐기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과학도 음악처럼 될 수 있다고 본다. 잘 살기 위한 목적으로서의 과학이 아니라 탐구와 오락으로서 과학에 접근한다면 일부 대중들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거부감도 분명 해소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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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과 실패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절실


오늘날 과학은 전문적 시설과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국가나 기업 등 외부 영향을 피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장하석 교수는 “하나의 키워드에 사로잡혀 특정 방향으로 연구 활동을 몰아가는 정책은 문제이다. 과학자들의 지적 자유와 독립성, 다양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장 교수는 과학의 발전과 대중화를 위해 사회적으로 변화의 바람이 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창의적인 발상과 과학적 도약은 언제나 예측불허의 상황에서 이뤄졌다며 ‘실리콘밸리의 신화 3인방(마크 저커버그, 빌 게이츠, 故 스티브 잡스)’을 예로 들었다.


페이스북의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 애플의 거장 故 스티브 잡스는 다니던 대학을 중퇴하고 창업에 뛰어들어 세계적인 혁신과 발전을 이끌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교수는 “이들이 불확실한 미래에 과감히 도전하고, 언제나 창의적인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실패하더라도 낙담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의 영향이 컸다”면서 “1명의 저커버그나 잡스는 나머지 99명의 도전과 실패가 있었기 때문에 탄생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이처럼 도전과 실패에 자유로운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적 측면에서도 ‘유연성’과 ‘다양성’을 강조했다. 교육의 목적이 단순히 성공이 되어서도 안 되고, 성공도 그저 ‘돈 잘 벌고 안정적인 삶을 사는’ 획일화된 성공이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 장 교수의 주장이다.


장하석 교수는 “동일한 목표를 갖고 경쟁을 하는 것이 오늘날 학생들을 비롯한 사회 구성원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라며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며 다양하고 유연한 가치관, 목표의식을 심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초·중·고등학교에서 안 되면 대학에서라도 이러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경희정신 실현에 공헌하길 바란다”


세계적인 과학철학자로 손꼽히는 장하석 교수는 ‘전지’의 역사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당연하게 여기는 기초적 과학지식의 근원을 파헤치는 것이 자신의 연구 방향이라고 소개한 그는 “우리가 매일 생각 없이 사용하는 건전지 내부에는 무엇이 들어있고, 어떤 원리로 전기를 만들어내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면서 “온도계와 물에 이어 최근 전지에 대해 탐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앞서 장 교수는 ‘온도계’의 역사와 발달 과정을 짚어보며 과학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그의 저서 <온도계의 철학>은 지난 2006년 과학철학계 분야의 노벨상이라고 평가받는 ‘라카토스상(LAKATOS AWARD)’을 수상했다.


장하석 교수는 “간단한 과학도 면밀히 살펴보면 길고 미묘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이런 역사를 통해 우리가 현재 과학을 이해하는 방식이 정답도 아니고, 과학의 발전과정에는 예측불허가 많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장 교수는 “학술과 평화의 정신을 가진 경희는 경계를 허물고, 차이를 인정하며, 다양성이 생동하는 미래 사회를 여는 주역이 될 것”이라며 “경희대 에미넌트 스칼라(Eminent Scholar)로서 경희정신의 실현에 미약하게나마 공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덧붙여 “대학에서 강의를 진행하다 보니 학업을 수행하거나 진로를 설정하는 데 어려움을 토로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다. 나도 많은 방황을 했기에 공감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면서 능동적인 태도로 노력한다면 분명 길이 열릴 것”이라며 학생들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도 전했다.



<장하석 교수 프로필>


경희대 에미넌트 스칼라(Eminent Scholar)이자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석좌교수.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와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대학원에서 물리학, 철학을 전공했다. ‘제2의 토마스 쿤’이라 불릴 만큼 국제적으로 저명한 과학철학자로서, 지난 2006년 저서 <온도계의 철학>을 통해 과학철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라카토스상(LAKATOS AWARD)’을 수상했다.



출처: http://www.khu.ac.kr/life/newsView.do?newsId=1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