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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필요했습니다. 남편 명의의 종신보험 다섯 개가 있었고, 사망 보험금은 거액이었어요. 처음엔 청부 살인을 의뢰했지만, 업자는 몇 번이나 돈만 받아가면서 사기를 치는 것 같더라고요. 결국 직접 범행을 저질러야겠다는 생각에 살인에 필요한 ‘부자’와 ‘초오’를 시장에서 구했습니다. 사약(死藥)에 쓰였던 약초들이라고 하더군요. 혹 실패할 가능성도 있으니 수면안정진정제도 100알 넘게 구해 두었습니다. 한약재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남편에게는 관절에 좋은 약이라고 속이고, 부자와 초오를 각각 달여서 먹였습니다.”

 
대법원 2007. 7. 26. 선고 2007도3687 판결

 

위는 실제 판시된 내용을 바탕으로 사건의 배경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2006년 여름, 가해자는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을 살해할 계획을 꾸며 초오, 부자, 수면안정진정제를 차례로 남편에게 먹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결국 넥타이로 남편의 목을 졸라 살해하였습니다. 1심에서 사건과 관련된 가해자들은 징역형(무기징역형, 12년형 등)을 선고받았고, 형량이 무거워 부당하다며 상소하여 재판이 3심까지 진행되었으나 최종 형량은 1심과 대동소이하게 결정되었습니다.


가해자가 보험금을 노리고 범행을 계획한 사건은 많지만 이 사건이 의료계에 특히나 큰 충격을 줬던 이유는, 가해자가 살인을 위한 도구로 ‘한약재’를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한약재는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약물의 오남용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 부각되어, 2000년대 보건의료계의 화두였던 한약의 안전성 논란에 다시금 휘발유를 끼얹은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현재 ‘시장·마트에서의 한약재’와 ‘한의원에서의 한약재’는 완전히 다른 유통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의원에서 처방되는 한약에 들어가는 한약재는 식약처의 엄격한 관리를 별도로 받고 있어 중금속이 검출되는 등의 사고가 없는 반면, 시중에 유통되는 약재는 일종의 농산물과 같이 취급되므로 중금속 등에 대한 관리가 허술하며, 약재를 달여먹은 사람들로부터 간 손상 등의 부작용이 일어나는 일도 부지기수에, 약재의 위품(僞品)이 유통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2015년에는 ‘백수오’로 둔갑한 ‘이엽우피소’가 시장에 유통되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오기도 했으니, 말이 더 필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보건의료인이 아닌 대다수의 사람들은 한약재의 유통 구조에 대한 정보는 물론이거니와 시장이나 마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한약재가 유발할 수 있는 많은 부작용들에 대한 정보를 얻기 힘든 상황입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한약재 수급 및 유통 관리 규정’을 통해 수은, 부자, 초오 등의 약재를 따로 ‘독성 주의 한약재’로 정하여 관리하고 있지만, 한약재 관리와 관련하여 보건복지부 내지는 식약처의 관리 및 감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발생하는 많은 사건들로 미루어볼 때 위의 규정 역시 실효성이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또다른 문제는, 식품과 한약재로 동시에 취급될 수 있는 100가지 이상의 한약재 품목들입니다. 흔히 건강기능식품으로 접할 수 있는 홍삼이 불면증, 성기능 감퇴 등의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숙지하고 홍삼 엑기스를 복용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녹용이 호흡곤란, 소화장애, 알레르기성 반응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아시나요? 이와 같이 중요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약재들이 ‘식품’으로 취급되어 누구나 섭취할 수 있는 ‘제품’으로 둔갑하게 된다면, 많은 분들이 호소할 부작용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게 되는 걸까요?

 

위에서 살펴본 살인 사건이 발생한지 이미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습니다만, 한약재 유통 관리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을 하고있네요. 오남용되는 한약재는 수많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음을 한의사와 의사 모두 강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한약과 양약 모두 전문가를 통해 처방받아야 안전한 것입니다. 식품으로 취급되어 시장과 마트에 유통되는 한약재, 이제는 국민 건강을 위해 적극적으로 규제되어야 할 때입니다.


출처: http://talktalkhani.net/?p=346